“무늬만 정규직에서 벗어나고 싶다”
“무늬만 정규직에서 벗어나고 싶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7.05.0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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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장 장기 파업에도 나 몰라라 하는 공사
[리포트] 서울시농수산물시장노조 파업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힘입어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자회사를 설립해 7~8개의 용역업체 소속이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자회사인 서울농수산시장관리주식회사는 그들을 직접 고용했고 가락시장·강서시장·양곡시장에서 주차·환경미화·시설 등을 담당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설움에서 벗어난 것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하지만 이 기쁨도 잠시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이름만 바뀐 허울뿐인 정규직이라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2016년 4월 서울시농수산물시장노동조합을 설립하게 된다. 

“껍데기만 정규직” 분노해 노조 설립

용역업체에서 자회사 편입 후 달라진 것이 있냐는 질문에 노조는 달라진 게 없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무늬만 자회사에 소속됐을 뿐 임금, 복지, 근무환경 등 개선된 것이 없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용역업체 소속 때와 같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과 그 임금도 몇 년 째 동결되어 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다. 노조는 이 모든 게 용역업체 때와 똑같이 최저임금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호봉제 도입도 이루어지지 않아 신입과 10년 차 경력자의 임금 차이가 없는 것도 문제이다. 서울시농수산물시장노동조합 백봉렬 위원장은 “작년 한 달 임금이 127만 원이 나왔다. 그것도 4대 보험을 떼면 115만 원 정도가 남는다. 대출금을 빼면 집에 생활비로 쓸 돈을 가져다줄 수가 없더라”라고 토로했다.

또한 퇴직 직원이 생겨도 신규 인력을 충원해 주지 않아 노동강도는 세질 수밖에 없고 마음 놓고 휴가도 갈 수도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내가 휴가를 가면 동료들이 고생을 하니까 미안해서 휴가를 못 가는 거야. 1년에 15일 연차 휴가가 있는데도 쓰질 못해. 그래서 어떻게 하냐면 휴가 갈 때 내 자리에 대신 근무할 사람을 구해서 그 사람한테 일당을 줘. 그렇게 가 휴가를.”

이렇게 비정상적인 휴가 문제는 작년까지 비일비재하게 일어지만 노조의 문제 제기로 현재는 금지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사측은 휴가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금지만 하고 있다.

“신입이 들어오면 작업복을 지급해야 하는데 3~4개월이 지나야 줄까말까다. 용역업체에 있을 때는 그래도 그런 건 바로바로 받았는데. 제대로 된 관리도 없고 그냥 관심 밖이라고 보면 된다.”

이들이 노조 설립을 실행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2016년 4월 1일 노조 설립 후 전체 500여 명의 직원 중 노조 가입자가 순식간에 300명을 넘었다. 서울시농수산물시장노동조합 김성상 사무국장은 “직원들의 내재된 분노가 노동조합 가입으로 표출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노조 조합원은 380여 명이다.

서울시 생활임금 적용에도 잡음

노조 설립 후 얼마 안 있어 2016년 5월 28일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망 사고는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내선순환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혼자 수리하던 외주업체 직원이 승강장에 진입하던 전동 열차에 치여 숨진 사고였다.

서울시는 이 사고를 계기로 서울시 산하기관 노동조건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노조에 따르면 산하기관 중 하나인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도 전체적인 실태조사를 받았고 노무사가 두 번 더 추가 조사를 나왔다고 한다. 당시 실태조사 담당자는 자회사인 서울농수산시장관리주식회사에 대해 “자회사 중에서도 노동조건이 제일 열악하다”라는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서울시는 실태조사 후 임금이 열악한 곳은 171만 원의 생활임금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서울농수산시장관리주식회사 직원들의 임금이 2017년부터 일부 인상됐다. 전체 인상이 아닌 일부 인상인 이유에 대해서 노조는 이렇게 설명했다.

“전체 직원 500여 명 중에 시설 쪽 근무자들 150여 명은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이에 사측은 ‘서울시 생활임금을 적용하겠지만 시설 쪽 근무자들은 최저임금을 받지 않으니 생활임금 대상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 때문에 역차별이 발생하고 직원들 사이에 위화감이 조성됐다.”

이외에도 생활임금을 주지 않으려는 꼼수는 계속됐다. 3교대 8시간 근무자들에게 ‘근로기준법 상 8시간 근무에는 1시간 휴게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을 이유로 생활임금 적용을 8시간이 아닌 7시간으로 계산하겠다고 한 것이다. 노조는 “생활임금 적용 전에는 8시간으로 계산했던 것을 생활임금 적용한다니까 1시간을 무급처리하는 것은 무늬만 생활임금 적용”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노조는 오랫동안 방치된 장시간 노동과 최저임금에 대한 보상으로 생활임금을 2016년까지 소급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은 2016년도 결산이 끝났기 때문에 법적으로 2016년 생활임금 소급 적용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선순위는 ‘단체협약’과 ‘임금 인상’

노조는 무엇보다 단체협약과 임금 인상이 가장 중요한 1순위라고 밝혔다. 노조는 교섭에 앞서 임단협 교섭 내용을 조합원 총투표 방식으로 진행했다. 임금부문에서는 ▲임금 인상률 30% ▲직무수당 지급 ▲상여금 300%, 성과급, 명절 상여금 ▲기본급 테이블 현실화(동일직종, 유사업무, 현장직과 사무직 등)를, 복지부문에서는 ▲식사 제공(식비), 교통비 지급 ▲법정공휴일, 회사 창립일, 노조 창립일 휴무 ▲여름 유급 휴가(3일) ▲병가 시 유급 처리가 결정됐다. 근무환경개선에서는 ▲인원 부족 시 신속한 인원 충원 ▲안전 장비(노후장비 교체 등) ▲근무지 환경개선(작업장, 휴게실, 쉼터, 대기실)을, 인사부문에서는 ▲자체 승진 보장, 낙하산 인사 근절 ▲근무평가 및 인사의 공정성 확보를 요구했다. 이외에도 근무자들의 특수건강검진에 관한 사항도 지적했다.

“야간에 일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특수건강검진을 시행하는데 사실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시장 안에는 5톤 트럭부터 시작해서 온갖 차들이 다 다니고 있는데 매연도 심하고 먼지도 많다. 이러한 유해환경지역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특수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교통 쪽 근무자 중에 폐암이 걸려 병가를 냈는데 무급 처리라서 돈을 못 받고 있다. 작업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2016년도 임단협 교섭요구 내용은 조합원 99.1%의 동의를 받아 확정됐다. 하지만 교섭에 앞서 사측 협상 당사자가 누가 되느냐에 대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우리는 법적으로 협상 대상이 아니니 자회사와 얘기하라”라는 입장이고 자회사 서울농수산시장관리주식회사 역시 협상 대상은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라는 입장이다. 노조는 “공사가 자회사에 예산도 책정하고 경영진도 파견하는 등 모든 실권을 가지고 있다”라며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협상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속되는 교섭 결렬에 파업 투쟁

노조는 설립 이후 지난 2월 22일까지 총 24차례의 교섭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지방노동위원회가 2차례 중재에 나섰지만 교섭은 번번이 결렬됐다. 이에 노조는 총 3차례의 파업(1차 파업 3월 8일, 2차 파업 3월 13~14일, 3차 파업 3월 20~22일)에 들어갔다. 3차 파업 이후 서울시 노동협력관이 공사에 지시하여 ‘공사-자회사-노조’ 3자가 참여한 교섭이 5차례 진행됐지만 공사와 자회사 모두 ‘협상 대상이 아니다, 예산이 없다’라는 말을 되풀이해 교섭은 또다시 결렬됐다. 이에 노조는 지난 4월 10일부터 13일까지 4차 파업에 들어갔다. 이번 파업에서는 공사 15층 사장실을 점거하여 성실한 교섭 촉구를 요구했다.

백봉렬 위원장은 “사측에서도 우리가 파업까지 할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노조가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파업 경험이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조합원들이 잘 따라와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성상 사무국장은 “오히려 조합원들이 오기가 생겼는지 파업을 그만두고 싶어 하지 않았다”라며 “다음에는 다양한 전술을 또 보여줄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노동조합의 파업을 비웃기라도 하듯 공사는 파업으로 빠진 조합원들을 대신해 대체인력을 투입했다. 노조법 제43조 ‘사용자의 채용 제한’에 따르면 “① 사용자는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다 ② 사용자는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를 도급 또는 하도급 줄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대체인력 투입을 자회사가 아닌 공사가 한 것은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라는 것이 공사의 입장이다.

백봉렬 위원장은 “투입한 대체인력들한테는 일당을 12만 원씩 주고 있다고 한다. 그 돈을 우리에게 줬으면 파업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라며 분개했다. 이어서 “공사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노조의 파업은 아무런 힘을 가질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투쟁

지난 4월 18일, 4차 파업이 끝난지 5일 만에 노조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앞에서 삭발식을 거행했다. 4차례나 이어진 파업에도 끄떡하지 않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를 향한 노조의 새로운 투쟁 방법이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 아래에서 백봉렬 위원장과 김성상 사무국장은 비장한 각오로 삭발에 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자회견문 낭독에서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용역회사 시절부터 이어진 일방통행 노사관계를 여전히 못 버리고 있는 것”이라며 “좀 더 대국적인 견지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과 자세가 필요하고 노조와의 교섭에 성실히 임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기자회견이 끝난 후 노조가 농성 천막을 준비하는 가운데 공사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얼마간 공사 직원들과 조합원들 간 충돌이 이어졌고 공사 직원들이 자리를 떠난 후에 조합원들은 찢어진 천막에 비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 날 이 자리에 있던 조합원 한 명은 “교섭을 미꾸라지처럼 피해 다니던 공사가 이럴 때만 재빠르게 움직인다”라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 있던 민주노총 서울본부 이재웅 전 본부장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공사는 자회사를 설립해놓고 일개 부서의 역할만 하도록 만들었다. 자회사 취지에 맞게 운영되려면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예산과 사업 계획 등 모든 권한을 자회사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백봉렬 위원장은 “오늘 농성에 앞서 서울시 노동협력관이 ‘2016년 임금 소급 적용은 어려우니 17년, 18년에 적용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시를 했다”라며 “구체적인 안은 나오지 않아 노조는 현재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라고 말했다. 김성상 사무국장은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공사 앞 천막을 걷지 않을 것이며 필요하면 서울시청 앞에서도 농성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